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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

코로나 이후 슬로시티가 주목받는 이유

1. 코로나19의 충격과 도시 생활의 한계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은 도시의 삶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든 계기였다. 밀집된 공간, 빠른 이동, 효율성 중심의 도시 구조는 감염병 확산을 촉진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었으며, 동시에 현대 도시가 가지고 있는 지속 불가능한 속도와 과잉 의존 시스템의 허약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도시민들은 재택근무, 거리두기, 이동 제한 등 물리적 제약 속에서 전보다 더 느리게, 더 단순하게 살아가는 방식을 체험하게 되었고, 이는 곧 “느린 삶”의 가능성과 필요성에 대한 집단적 인식을 변화시켰다. 자연과의 거리감, 공동체의 단절, 심리적 소외는 그간 가려져 있던 도시화의 부작용이었다는 점이 새삼 부각되었고, 이에 대한 대안적 모델로 슬로시티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코로나 이후 도시 생활의 위기가 ‘느림’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전환점을 만든 것이다. 더 이상 ‘성장’만이 도시의 미덕이 아닌, 회복력, 자립성, 공동체성이 도시의 생존 조건이 되었다.

코로나 이후 슬로시티가 주목받는 이유

 

2. 지역 중심성과 자급자족의 필요성 부각

슬로시티의 핵심 가치는 **‘지역성(Locality)’**에 있다. 이는 곧,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 내에서 자원을 순환시키고, 생산하고, 소비하는 생태계 구축을 의미한다. 코로나는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와 물류 지연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외부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었는지를 체감하게 했다. 그 결과, 지역 기반의 자급자족 모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급격히 증가했다.

슬로시티 인증 마을들은 대부분 농업, 수공예, 지역 식품 생산 등에 기반을 둔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대형 유통망보다는 로컬 마켓과 주민 간 교류에 중점을 둔다. 이는 위기 상황에서도 기본적인 생활이 유지되는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오르비에토나 독일의 발스펠트처럼 지역 농가와 주민이 직접 연결된 유통 구조는 외부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도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슬로시티는 디지털 전환과도 양립 가능하다. 일부 도시에서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지역 농산물의 온라인 판매, 지역 커뮤니티 연결, 비대면 교육 등의 시도를 하며, 느림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기술을 유연하게 수용하고 있다.

 

3. 심리적 웰빙과 도시의 휴식 기능

코로나 이후 사람들은 ‘삶의 질’에 대해 전보다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특히 심리적 웰빙, 정신 건강, 자연과의 연결감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많은 도시민들은 도시의 빠른 속도와 경쟁 중심 문화가 우울, 불안, 번아웃을 유발한다는 점을 자각하게 되었고, ‘치유’와 ‘쉼’의 공간으로서 도시의 기능을 새롭게 상상하게 되었다.

슬로시티는 이러한 도시의 재설계를 위한 강력한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다. 숲, 강, 농촌 풍경 속에서 천천히 걷고, 지역 주민과 인사를 나누고, 직접 요리를 해먹는 일상의 회복은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낮추고, 삶의 주도권을 다시 돌려준다.
청송, 담양, 신안군 증도와 같은 한국의 슬로시티 사례도 이를 잘 보여준다.
이들 도시는 팬데믹 이후 오히려 힐링 관광지로 주목받으며 “도시에서 벗어나 쉬러 가는 곳”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특히 교육과 가족 중심의 체험이 가능한 슬로시티 프로그램은, 아이들과 함께 ‘삶의 가치’를 배우는 공간으로서 코로나 이후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이는 단순한 관광을 넘어 삶의 태도 전체를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4. 슬로시티, 팬데믹 이후 도시의 새로운 방향

슬로시티는 코로나 이후 더 이상 ‘느림의 로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 되어가고 있다. 이 운동은 기술 발전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공동체가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한다. 빠름과 효율로 대표되는 기존의 도시 문명과 대비되는 슬로시티의 가치는, 지속 가능하고 회복 가능한 도시를 설계하는 데 핵심 열쇠가 된다.

또한, 기후 위기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글로벌 과제 속에서 로컬 중심의 생태 전략, 시민 참여형 거버넌스, 문화 자산의 보존과 활용은 점점 더 많은 도시들이 추구하게 될 요소들이다. 슬로시티는 이를 이미 오래전부터 실천해온 도시 모델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결국 ‘무엇을 위한 도시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요구한다.
이 질문에 가장 선명하고 인간적인 대답을 제공하는 모델이 바로 슬로시티다. 빠름의 시대를 지나 ‘깊이’와 ‘연결’의 시대로 나아가야 할 지금, 슬로시티는 단지 트렌드가 아니라 새로운 도시 철학의 방향을 제시하는 길잡이다.